Fennec Fox , 사막여우




꺄아~
나 이제 동영상도 올릴줄 알게 되었다!!ㅎㅎ
요즘 내가 푹 빠진 사막여우
외국에선 실제로 애완용으로 키우고 있단다.
귀엽긴한대....
야생습성이 남아서 무언가를 파보려는 습성과
점프를 하는 습성이 있어 엄청 주의가 필요하단다
일본에서도 유행중!
가격은 약 1300만원정도란다.
이 영상을 보기위해 하지도 않는
youTube를 열심히 뒤졌다...
안되는 영어를 해석하기 위해 사전을 옆에 끼고
아무튼 귀여운 모습에 반해버리겠음
금붕어 잡아 먹는 모습에 시껍했지만..ㅠㅠ
오빠, 저도 이런거 한마리 아니 두마리만 사주세욤+_+!!
한마리만 키우면 외로워 한다고 두마리 이상 키우라고 리플에 써있었다.


앗! 참고로 사막 여우는 개과 란다....
난....고양이과 아닐까 의심했는데...
둘다 너무 비슷해...;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고등학교때 이 시를 배웠을때는
그냥 시인가보다...했는데...
나이를 조금씩 먹다 보니
이 시 참 멋진것 같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는것.
그전에는 난 인류의 절반인 여자수천만중에 하나겠지만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나는 특별해 질수 있다.
요즘 나와 함께 다녀주시는 연포남분들께
드리고 싶은 글이다.
누구든 먼저 꽃을 발견하고
그 꽃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그 꽃은 그때야 당신에게 의미 있어지는 것이라고..

물고기, 아쿠아리움.


원래 나는 살아있는 것을 좋아한다.
동물이랑 물고기는 내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것이다.
원래 겨울에 갔던 곳이지만 이제 올리는
COEX 아쿠아리움,
제작년에 가봤다.처음으로 가보는 곳이라
무척 설렜지만, 가는길에 싸우고 돌아갈뻔하고..=_=;
아무튼 ..우리결국 갔다 끝나기 1시간 반전에..
충분히 다 볼수 있을꺼라 생각했지만,
짧았던 시간들..

곰치였나..;아무튼 얼굴을 볼수 없었다. 생각보다 엄청 컸다.

이름이 생각이 안난다..;
각질을 먹어준다는 닥터피쉬 손을 집어넣으면 달려드는데 느낌이 상당히..T^T묘하다(?)
박쥐도 있었다!
나닮았다고 한 물고기... 눈만 닮았나?ㅎㅎㅎ
하이라이트 상어!! 그러나 어두워 사진이 잘안나온다.ㅠㅠ

아쿠아리움이라고 물고기만 있을줄 알았더니
물에 관련한 동물도 꽤 많았다.
그래서 난 더 신났다!
비버, 수달, 상어 등등 도 있다.
비버는 생각보다 꽤 컸다.
그리고 왠지 갇혀있는 다는 느낌이 들어 안쓰러웠다.
바다물고기만 볼줄 알았는데..
강가 물고기도 많다.
그리고 위에 냉장고 사진은 사실 그냥 냉장고를 꾸며놓은 사진이 아니고
물이 차있고 물고기들이 있는데
저렇게 보니 잘 안보이네;
음..우체통을 수족관으로 꾸미는등.
볼거리는 많았다.
단지 시간이 없을뿐...T^T
아무튼 난 아주아주 좋았다.
다음에 또가야지~~^^

Stay Hungry Stay Foolish

4월 30일.
눈물이 주룩주룩
아침부터 밤까지 눈물만 주룩주룩
stay hungry stay foolish는
스티븐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에서
한 연설에 있는 말이다
내 블로그에도 올려놨는데..
이 말의 의미를 잘 몰랐는데..
우연찮게 학원에서 찾을수 있었다.
스티븐 잡스는 연설문을 읽어보면
그는 굉장히 힘든 삶을 살았다.
밑바닥이라고 할수 있는 어두운 부터..
그리고 이해할수 없지만,(나는..)
대학도 포기하고 수업을 청강하다가..
애플이라는 대박 회사는 만들게 되었다.
아무튼 연설문은 한번쯤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배우는 것에 굶주려하고
남이 모라고 하든(손가락질을 하든 나에게 미련하다고 하든)
나의 갈길을 가라는 말이라는 것이였다.
대학을 포기했을때 사람들은 그에게 바보라고 했을것이고
청강을 들기로 했을때는 배움에 목이 말라 있었다는 것이다.
그만한 열정으로 살라고 했던것 같다.



선생님의 하신말 중에 나에게 기억에 남는건..
-머리가 중요한게 아니고 너희들은 단지 게으르고 끈기가 없을뿐이야.
  계획을 세우지말고 그냥해, 시간 가는줄 모르고 하다보면 되게 되있어.
  목표만 바라보고 가면 돼, 가다가 죽으면 그게 나의 끝지점인거지.
  그래도 난 하다가 죽을꺼야.
난 너무 계획만 세우고 있는게 아닐까?
난 항상 묻는다."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수 있어?"
어떻게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냥 계속 하는게 중요한거였다.
멍청이.

라색 후기

오랫만에 포스팅!

진짜 오랫만이다

음...한동안 컴터와 멀리 지냈다는건 아니다.

그냥 열심히 놀았다.ㅎㅎ

1월 23일 라색을 했다.
인천 부평성모안과에서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안과라고 추천을 엄청 하셔서
난 구리에 사는데 인천에 가서 했다.ㅠㅠ
24일이 설날인지라 차가 엄청 막혔는데 난 생각없이 아빠차 타고 가다가
8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8시에 용산에서 인천 급행을 타고 겨우겨우 8시 40분에 도착해서
부랴부랴 하게 되었다.

들어가자마자 간호사 언니들이 타준 약을 먹고 눈검사를 약간하고 수술후 주의사항을 들은 후,수술실에 들어갔다.
간호사 언니들은 평소에는 친절했으니 내가 늦었고 마지막 수술환자라 그런지 그날따라
좀 날카로웠다..ㅠ_ㅠ
난 보호자도 없이 혼자 온거라 깜짝 놀란듯 싶었다...-_-;
그때쯤 아빠랑 소라는 밀린 도로에서 천천히 오고 계셨다
이상한 기계(사실 라색수술을 알아보면 제일 유명한 기계)쪽에 누으라고 하셔서
눕고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천장을 바라 보고 있으니 눈쪽으로 기계 일부분이 왔다
빨간색레이저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 중간에 초록색 빛이 보였다
거기를 열심히 보라고 했다. 집중해서 열심히 보고 있는데 눈위로 몬가 슉~ 지나갔다.
이제 내 각막이 벗겨졌나봐..ㅠ_ㅠ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모 눈은 마취가 되서 전혀 아프지는 않았지만 눈위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이 두려움...ㄷㄷㄷ
그리고 날 제일 기분 나쁘게 했던 살타는 냄새..ㅠ_ㅠ
이건 어쩔수 없겠지만 나는 원래는 왼쪽 오른쪽 둘다 그냥 라색을 하기로 하였는데
왼쪽이 더 나빠셔 왼쪽은 m-라색을 하게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왼쪽이 시간도 더 오래걸린것 같다.(사실 오른쪽은 뭣모르고 했지만 왼쪽은 느낌이 와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ㅠㅠ)

그렇게 5~10분 정도 수술이 끝나고 일어서라고 했을때
이게 끝인가 싶었는데 진짜 끝이 었다..ㅠㅠ
바로 눈이 잘보이지는 않았다 뿌연 세상이였다
그래도 안경 벗고 다니던 때 보다는 잘보였다
그.러.나. 우리아빠는 아직 오시지 않았고 간호사 언니들은 일찍 가고 싶었던 마음인지
아니면 내가 가엾었는지 엘레베이터까지 잡아주셨다.
난 아빠 기다리가다 가려고 했는데..ㅠ_ㅠ잘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내려와
바깥에서 아빠에게 전화를 하고 한참 기다렸다가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아빠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좀 뻑뻑한 느낌에 살짝 아린 느낌도 들었지만 그리 아프지 않았다
전에 설명해 주신 실장님 말로는 2~3일 정도 눈에서 눈물이 엄청나오고 통증이 있을지 모른다고 하셨던게 겁날뿐...

그러나 나는 참 ..=_=;튼튼햇는지 이런 고통도 없었고 감각도 없고 어두운 방안에 혼자 쳐박혀
설날에도 나홀로 지냈다.흥흥! 라디오만이 나와 함께 놀아줬다..T^T
진통제는 안약을 줬는데 나는 진통제안약이 더 아팠다. 인공눈물은 하루에 5개씩은 썼던거 같다
그리고 항생제(?)같은 안약도 2시간에 한번씩 넣어야 해서 알람으로 맞춰두고 꼭 넣었다.
1개월이 지난 지금 오른쪽 눈은 1.2 왼쪽눈은 1.0 이라는데 내가 느끼는 것은 오른쪽은 진짜 잘보이는데 왼쪽은 아직 아주 정확히 보이지는 않는다 1.0이라는데 왜 이러지 이러면서 심리적으로 불안하지만 라색은 회복기간이 길다..ㅠ_ㅠ 3~6개월후가 지나야 안정되므로 마음을 차분히 먹고 천천히 기다리기로 했다.

아직 회복이 다 되지 않아 3개월간 써야하는 썬글라스 만이 두려울뿐...ㄷㄷㄷ
사람들이 길가다가 쳐다보는 것쯤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ㅠ_ㅠ
옆집아줌마랑 엘레베이터 타고 올라가고있는데 아줌마가 물어보셨다
누가 쌍꺼풀했어?.....젠장....ㅠ_ㅠ 옆짚아들1 께서 나의 썬글라스 낀 모습을 보고
말했던 것이다...그래서 내가 친절히 상꺼풀이 아니라 라색했어요.
라고..말해 드렸다...그리고 우리 잘 알지도 못하면서 키큰얘가 쌍꺼풀 한거 같다고 하면 어떻하니... 난 소라보다 작은데...졸지에 소라는 쌍꺼풀 수술한 동생이 되어있었다..ㅎㅎㅎ
아무튼 어여 내눈이 좋아졌음 좋겠다.

이만 라색 후기 끝!

실수


어느날부터 사소한 다툼이 시작된다

왜 빨리 답장을 하지않아?

왜 다른여자랑 얘기를 하는거야?

왜 나랑 있을때 자꾸 다른곳을 보는거야?

이런 사소하지만 여자는 크다고 느끼는 것들을 말하면
보통 남자들은 이렇게 대꾸한다

'왜 그러는거야 별것도 아닌걸로'

여기서 여자는 발끈하게 된다

'별것도 아니라고? 이게별게아니야? 너한텐 별게 아니라고?'

남자는 싸우고 말하는게 귀찮기때문에
여자의말을 다 듣고 풀어주기보단 그냥 덮으려고한다

'아 그냥 친군데 왜 의심해 아무것도 아니야'

'바빴어 몰랐어 싸움걸지좀마라 그만하자'

여자는 처음부터 싸움걸려는것도 아니였고
그저 자기가 느끼는 서운함을 밖으로 들어냈을뿐인데

그때 남자의 태도에 상처받고 화내면서 얘기하게 된다

여기서 남자의 태도가 그 커플이

얼마나 장기전이될지 단기전이될지 결정한다 이게 발단,

이런식으로 자주 싸우게되면 남자는 짜증만 내기 시작한다

뭔말을하더라도 "또 왜그래" 이게 시작

"자꾸이러면 난 진짜 힘들다" 이런말을 하게된다

그때부터 여자는 생각한다

멍멍 큰소리로 짖을때 주인에게맞아서 눈치보던 강아지마냥

자신의 서운함을 이해해주기는 커녕

이유없는 투정으로 받아들이고 화내는 남자의 태도에서

상처아닌 상처를 입게 되는것이다

'내가 서운해서 서운한걸 말하면

너에겐 이해안되는 일이 되어서 화내는구나'

이때부터 남자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진다

'너랑 안싸우려면 너와내가 안맞는 사이가 아니려면

난 서운해도 화나도 그냥 말을 말아야겠구나'

'니 생각을 바꾸느니 너를 바꾸느니 내 맘을 바꿔야겠다'

여기서부터 싸움은 아마 줄어들것이다

이쯤되면 남자는 이런 착각을 하게 될 수도 있을것이다

'내가 많이 좋아서 알아서 내게 맞추는건가?'

'이제야 날 이해하는군'

하지만 여자는 속으로 칼을갈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여- 왜 이렇게 연락을 안했어

남- 바빴다고

여- (속으로: 내목소리가 듣고싶다면 1분이라도 시간냈지)

응 그래 바빴구나

남- 그래 그런건 이해해야지

여- (속으로: 이해는 둘이하는거지 혼자하는건가?)

응 알겠어 미안 ~

남자는 이로써 전혀 싸울일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여자의 가슴엔 하나 늘어난 셈이다

여자는 말론 미안하다곤 하지만 속으론 전~혀 아니올씨다

너한테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생각하고 만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여가다보면 어느새 모든걸 해탈한

석가모니 마냥 간디마냥 남자가 지나치게 서운하게해도 그러려니하게된다

그쯤되면 남자는 생각한다

남- 뭐지? 이년 지랄할때도됬는데 아무말도 안하네

여- ?? 난진짜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여자는 정말 아무렇지가 않다

왜냐면, 자기가 생각하기에 정말 사랑한다면 정말 좋아한다면

할수없는 행동을 남자는 지금껏 해왔고

그러면서, 아 얘는

그러면서, 아 얘는 날 결국 안좋아하는구나

스스로 세뇌시켰으며 그렇게 내려진 결론은

나를 별로안좋아하는데 그럴수도있지?라며 아무렇지도않게 되는것이다

남- 진짜미안해 전화한다는게 깜빡했어 친구들이 자꾸 술을줘서

여- ??아냐 난 진짜로 괜찮아 ~ 재밌었지

남- 아..진짜 미안해

여- 괜찮다는데도 그러네??

(속마음: 난 진짜 괜찮은데 오늘은 널 기다리지도않았고

내 할일을 하고있었고 니가 종일내게 연락하지않았단것도 조금전에야깨달았는데)

남자는 그제서야 웃으면서 고마워 날 이해해주는건 너뿐이야 라고말하게된다

여자는 무덤덤하다 그러다가 어느날 심심한 오후쯤되면 여자는 생각하게 된다

여자- 사귀는거같지도않고 언제까지이러고 이해하고 사겨야하나

남자에게 전화를 걸게된다

여- 헤어지자

남- ..................갑자기 무슨소리야?

여- 헤어지자구

(속마음: 갑자기? 너한텐 갑자기겠지만 나한텐 그때부터시작된이별이였어)

남- 갑자기 왜그래...내가뭐잘못했어?

여- (속마음: 더이상 뭔말을 하고싶지도않다 설명도귀찮다)

아니, 그런거아니야 니잘못없어 그냥 헤어지자

남자는 헤어지고나서 생각한다

자기가 못해준것, 자기가 해주지못한것, 싸울때 져주지못한것

여자가 울면서 말할때 진지하게 들어주지못한것

그동안의 자기가했던 몇번의 실수를 그때서야 알게된다

남자의 모든행동을 100% 이해하라는건

여자에게 사랑을 포기하라는 뜻이라는걸 

                     --------------------------------------------------------

                              아닐꺼 같지만 대다수 여자는 공감할꺼라고 생각한다.

 

새해 1월1일

항상 시작은 설레이기 마련,

그렇지만 올해는 몬가 싱숭생숭하게 넘어갔다,

걱정만 하지말고 실천하고 널리 아는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내일부터는 성실히~~!!^^

스티븐잡스의 스탠포드대 졸업 축사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중 어떤 한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2A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 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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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설레이게 만드는 글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 마다 읽어봐야 겠다.^^

여행

다시 가고 싶다.

그 두근두근 거림.

요즘 너무 무료해.

그래도....오늘은 첫날이니까..

하시 한번 화이팅!!^^

[구리] arista에서

오늘은 오랫만에 보는 친구들을 만났다
그건 바로 선미와 혜란~^0^
오랫만에 봐서 가끔 어색하기도 했지만....
역시 우리의 수다는 멈추지 않았고 밥은 먹은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그러다 후식 커피를 즐기기 위하여 찾은 카페.
혜란이가 분위기 괜찮다는 말에 생각 보다 멀었지만
버스를 타며 매일 보는 그곳 arista에 가보게 되었다.

지금 아래 사진과 위 사진은 한쪽 벽면이다. 작지 않은 책장을 가득채운 레코드판, CD, 책들...너무 따듯해 보였다.

2층 내부인데 가운데 물을 마실수 있게 해놨다. 3층도 있는데 거기는 야외 테라스라서 추위를 타는 우리는 나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조용하고 분위기도 따뜻해 보여 참 마음에 들었다.
일단 , 사람이 별로 없어서 좋았다..^^;
혜란이의 DSLR강의와 사진의 구도에 대한 열렬한 강의를 들어주시고,
난 또 다시 오는 지름신을 막아야 했다.
나도 갖고 싶은..ㅠ_ㅠ사진기...
그렇지만 그 무게는 과연 휴대가 가능한가...
를 의심케 함으로 나는 참아야 한다.참아야 한다.참아야한다.
열심히 속으로 외우고 있다.

내 똑딱이로 혜란이의 DSLR과 똑같은 구도로 찍어봤는데 역시....ㅠ_ㅠ마음만 아플뿐.


아무튼 우리는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열심히 떠들다가
시간이 늦어서 슬슬 집에 또 열심히 걸어왔다.
오랫만에 보는 동네 친구들 ...
역시 좋다.
역시 친구란 오래될수록 좋은거 같다.

오랫만에 모여 주셨으니 함께 찍은 사진 추가!